20여년을..
성당 자매들의 모임인 성모회
이제 하나 둘 떠나가고 여섯명이 남았다.
한달에 한번씩 만나 얼굴이라도 보자고 하지만
이제는 이리저리 뿔뿔이 흩어져 살아서인지
얼굴마주보고 밥 한번 먹기도 쉽지가 않다,
만날때 마다 우리도 언제 콧바람 한번 쐬자~
말로는 가자 가자 하면서도 그게 그리 쉽지않아서
일년을 벼르고 별러 떠나게된 용문사
가을단풍과 샛노란 은행잎이 압권이라는 말에
무조건 금요일에 떠나자...한것이
두명이 갑자기 일이생겨 못간다니
네명이서 의기투합 고고 씽~
옥수역에서 전철을 타니
등산복차림의 남녀노소가 초만원이다.
한시간 넘어 전철을 타야 한다는데 어쩌지?
앉아있던 아저씨가 우리들의 옷차림을 보고
신발이 비싼거네 잠바가 어디꺼네
바지가 기능성이네 해싸면서
아는채를 하더니
다음에 용문산을 가려거든 용산에서 타라고 한다.
용산이 시발역이므로 무조건 앉아서 갈수있다고...
이런
귀동냥도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 도움이 된다는 사실...
담번엔 서서 고생하지말고
무조건 용산으로가서 타는겨..하믄서리
회원중 한사람이 부부동반 거제여행으로 빠지게 되었지만
알토란같은 정보를 주었다.
용문역에 내리거등 무조건 ...
하얀 버스에 ㅡ여기가 좋겠네ㅡ
라고 쓴 버스에 올라타라고...
7000원 짜리 뷔페식당인데
음식이 가짓수도 많고 깔끔하고 먹을만 한데다가
식사를 한 손님들을 용문사까지 무료로 태워다 주고
용문사 관광이 끝나면 30분 단위로
전철역까지 무료로 태워다 준단다.
세상에 무슨 이런일이?
그래도 자기 한번 믿고 꼭 그렇게 다녀오라고 하네
한시간 넘게 전철에 흔들리다가 드디어 용문역에 도착하자
전철역앞에 음식점에서 나온차들이 나라비를 섰다
돼지고추장 숯불고기 산더덕구이 토종닭 오리탕
메뉴도 가지가지...
이리저리 살피다보니 길건너 대형 버스에
여기가좋겠네라는 노란색 버스가 손님을 태우기에 줄을 섰더니
아이구 노란색 아니고 하얀색 타랬는데...하며
다리아가 벅벅 우겨댄다.
일단 상호가 여기가 좋겠네 이니
하얀색 노란색 가리지 말고 타고가자
가보고 실비아가 말한 집이 아니라면
하약색 여기가 좋겠네 버스를 타고가서
저녁을 먹고오면 될것 아니냐 하고설랑...
여기가 좋겠네 뷔페식당
넓은 교실을 몇개 겹친것처럼 실내가 어마어마한데다
식사하려고 줄 선 사람들이 또한 어마어마
두줄로 서서 입장하는데 십여분...
수십가지 음식들이 차려져있는데
어디 하나 흠 잡을데없이 깔끔하고 맛있었다.
수수백명이 한자리에서 식사를 하자니..
와글와글 시끌벅적
정말 이렇게 많은 손님들이 매일같이 들이닥친다니
음식점이 아니라 기업이라고 해야할 정도였다.
세상에나...
단돈 7000원짜리가 어찌나 먹음직스럽던지..
이렇게 한쟁반 수북 담아오니
더 이상은 죽어도 못먹겠더라
산채나물도 짜지않고 심심하니 향기로웠고
오징어튀김도 다시마튀김도
금방 튀긴것처럼 바삭바삭하고
서리태와 땅콩을 섞어 졸인
콩자반도 너무 맛있었다
잡채며 멸치볶음 꽁치구이도 맛있었고
옆자리에 아저씨들이 한쟁반 수북 담아온 도토리묵도
너무 맛있게 보였지만
배가불러 더 이상은 그림의 떡이 었을 뿐
식수대가 따로 있어 1회용 커피만 준비해오면
커피까지 앉은 자리에서 해결할수있었을텐데
아쉽게도 커피는 배가 불러 더 들어갈 자리가 없었지만
옆코너에서 한잔에 1000원씩 판매되고 있었다.
식사후 영수증을 챙겨 줄을 서서 기다렸더니
이번에야 말로 여기가좋겠네 하얀버스가
우리를 용문사까지 데려다 준단다.
구경을 다 하고 하차지점으로 오면
전철역까지 모셔주는 버스가 30분 간격으로 왕래하니
편안하게 구경하고 내려오시라고...
15분쯤산길을 돌아 용문사 정류장에 도착했다.
주말과 공휴일엔 발디딜 틈이 없다고 하는데
마침 금요일이라 한가한 편이란다.
솔냄새 나무냄새 ..청량한 공기냄새
얼마만에 낙엽진 송림을 거니는것인지...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자니 힘든줄도 모르고
아프던 다리는 언제 그랬냐는듯 멀쩡해서 신기했다.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913)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일설에는 경순왕(927~935재위)이 친히 행차하여 창사 하였다고 한다.
고려 우왕 4년(1378) 지천대사가 개풍 경천사의 대장경을 옮겨 봉안하였고
조선 태조 4년(1395) 조안화상이 중창하였다.
세종 29년(1447) 수양대군이 모후 소헌왕후 심씨를 위하여 보전을 다시 지었고
세조 3년(1457) 왕명으로 중수하였다.
성종 11년(1480) 처안스님이 중수한 뒤
고종 30년(1893) 봉성 대사가 중창하였으나,
순종원년(1907)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이 불태웠다.
1909년 취운스님이 큰방을 중건한 뒤 1938년 태욱스님이
대웅전, 어실각, 노전, 칠성각, 기념각, 요사등을 중건하였으며,
1982년부터 지금까지 대웅전, 삼성각, 범종각, 지장전, 관음전,
요사채, 일주문, 다원 등을 새로 중건하고 불사리탑, 미륵불을 조성하였다.
경내에는 권근이 지은 보물 제531호 정지국사부도 및 비와
지방유형문화재 제172호 금동관음보살좌상,
천연기념물 제 30호 은행나무가 있다.
대낮임에도 울창한 송림때문에 어둑어둑..
천년넘은 위용을 자랑하듯 하늘을 찌르는듯
웅장한 은행나무는 만추의 태양아래
황금색으로 불타올랐다.
문화제 소개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는키 39.2m로 우리나라 은행나무 중 가장 키가 크며,
뿌리 부분 둘레만 해도 15.2m나 된다. 나이는 약 1,100년으로,
신라 신덕왕 2년(913)에 대경대사가 용문사를 창건한 후
얼마되지 않아 심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나라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때마다
큰소리로 울어 위험을 미리 알렸다고 하는데,
조선의 마지막 왕인 고종이 승하했을 때는
가지 한 개가 부러졌다고 한다.
나라에서는 이런 용문사 은행나무를 소중히 여겨
조선 세종 때 당상관(정3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망국의 한을 품고 떠난 마의태자”
마의태자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로,
신라가 고려 왕건에 대항할 길이 없어 군신회의를 열고 항복을 논의할 때
신라 천년사직을 하루아침에 버릴 수 없다고 말하며 항복에 반대하였다.
결국 고려에 항복 문서가 전달되자 마의태자는 개골산(금강산)에 들어가
베옷을 입고 초근목피로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마의태자가 궁을 떠나 개골산으로 가던 중
용문사에 들렀을 때 심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상세설명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1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42m, 뿌리부분 둘레 15.2m이다.
우리나라 은행나무 가운데 나이와 높이에 있어서
최고 높은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줄기 아래에 혹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나무는 통일신라 경순왕(재위 927∼935)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전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외에도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었는데 그 자리에서 피가 났다는 이야기,
정미의병(1907) 항쟁 때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는데
이 나무만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나라에 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소리를 내어 알렸다고도 한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
당상관(정3품)이란 품계를 받을 만큼 중히 여겨져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이며,
생물학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공식명칭 |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 주소 | 경기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6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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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 천연기념물 30 | 전화번호 | 031-770-2897 |
지정일 | 1962.12.03 | 휴무일 | - |
한자명칭 | 楊平 龍門寺 은행나무 | 이용요금 | - |
테마 | 자연유산, 천연기념물, 문화역사기념물, 종교 | 주차여부 |
수산나가 타온 커피와
빈 손으로가기 뭣해 사과3개 썰어간것
다리아가 오쿠에다 삶아온 달걀
관광객들과 나누어먹고
아침 10시 30분에 만나 11시 전철을 타고 떠난
가을여행
용문사에 도착하니 12시가 조금 넘었고
용문사까지 구경하고 놀며놀며 집에 돌아오니 6시가 조금 넘었다.
한시간쯤 더 일찍 떠나거나
한시간쯤 더 늦게 떠난다면
뷔페식당의 혼잡을 조금은 피할수도 있을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이번 용문사여행은
경로 우대차원에서 전철비도 공짜
단 돈 7000원으로 하루종일 배부르게 잘 먹고
가을정취 맘껏 누리고 돌아왔으니
다음번엔 여행은 어디가 좋을까???
물어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