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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내 어렸을적에 꾸던꿈

                 옛날 옛적 엄마가 꾸던 꿈      2006 10.26일

참....

내 아주 어렸을적 꿈은...

얼릉..빨리 커서... 시집가는게 꿈 이었어요.


경상북도 영주..

군내에서 첫손가락 꼽히던 99칸 대궐 같던 우리집 중앙려관


4대 독자이시며 군내에서 제일 가는 갑부였던  아버지는 

몇 대를 독자로 내려 오면서 일가 친척 하나없이 혼자서 크신 외로움에 사무쳐

당신만은 무슨 수를 쓰던지 자식들을 많이 두어 서로 의지 하며 살게 해야 겠다고

결심을 하시고 어찌나 부인을 많이 얻으셨던지 .....


그런 와중에도  3부인 한테서 난 자식이 겨우 3남 3녀

그 시절에야 눈만 마주쳐도 애가 들어 선다는 호랑이 담배 피던시절

혼자서도 12명 한죽은 식은죽 먹기로 만들어 내던 시절이 었건만

아버지께만은 예외 였으니...


오죽하면 삼신 빌어주는 할머니가 전속으로 채용되어

먹고 자고 아예 안방 구석을 차지하고 살았더래요...

이리하여...

삼신 할머니의 지극정성이 하늘에 닿았던지 ..

우리 엄마 39살 우리 아부지53살에

드디어 ...

9월 하고도 스무아흐레 그믐날 축시에 이세상에 나온 인물이 있었으니

이름 하여 해방동이 장 소피아 였더라네요


3남 4녀중의 막내딸로 태어난 나는 바로 위의 오빠와 9살의 터울인 관계로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 한체 종종걸음으로 사방을 뛰어 다니던 너댓살 짜리 나는

 어떤날은 오빠등에 엎혀서  동부학교에도 같이가고 어느땐 언니등에 엎혀서

일제시대 심상소학교인 영주초등학교  교실에서  일본선생님들 앞에서 온갖 재롱도 다 부리고....


참 지금같으면 어린애를 학교에 동반 하다니 어림 반푼어치도 없을 꿈 같은 이야기 일뿐...


전화기가 걸려 있던 현관 에서부터 17개의 객실이 줄지어 있는 반질 반질 윤기도는 복도를

하루 종일 통통 거리며 뛰어다니며 깔깔 웃음을 터뜨리던 귀염둥이 철부지 어린애 였어요


그러다가  

6.25사변통에 고래등같던 우리집은

마지막 읍내를 사수 하던 헌병사령부로 징발되었는가 하면.

그후엔  인민군 야전병원으로 또 다시 징발되었고 마지막엔 아군들의 집중폭격으로

무참하게 쓰러져 버리고 평생 고생이라고 해보지 않았던 부모님과 형제들은 무너진 집터에다 

 짚을 썰어 진흙을 이겨만든 보잘것 없는 집을 짓고

고단한 삶을 이어가게 되는 불상사기 일어나고 말았죠


그 가난하던 시절..

쌀이라곤  한줌을 얹어 아버지 밥그릇에 올리고 나머지 식구들은 꽁보리밥으로

허기를 달랠 때 나는 왜 하얀밥 아주냐고 어찌나 보챘던지 원 ...

지금 같으면 아이들이 제일인 세상

당연히 어른은 꽁보리밥이요 아이들이 쌀밥인 세상이건만...



그런 고생 속에서도 나는 초등 학교에 들어 가게 되었고

60명씩 3반인 1학년 중에 영광스럽게도 학예회에 뽑힌 3명중에 한명이 되었죠

이름 하여 파랑새

파랑새 파랑새 어째서 파랗니?

마음씨 고우니 파랗지...

그런 노래 중에 파랑새가 내가 맡은 역이었죠

그런데  아뿔사~~~~

무슨수로 파랑 치마 노랑 저고리를 해 입을 수가 있을까?

지금으로 말하자면 그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일까 만은

늦둥이 딸이 학예회에 뽑혔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엄마의 얼굴은 근심으로 변했고

어떻게 학예회에 갈 옷을 마련 하는가가 큰 문제로 닥아온 것이었어요


3학년 언니중에 비단장사하는집이 있는데

설 명절이면 언제나 빨강 치마에 노랑색 모번단 저고리

추석 명절이면 꽃무늬도 아름다운 뉴똥치마 저고리로  어여쁘게 치장을 하고

동네 방네 옷자랑을 하고 다니는게 어찌나 부럽던지 


그때부터 내꿈은    

비단이 장수 왕서방 한테 시집가는게 가장 큰 꿈이었네요

나는 커서 꼭 비단이 장사 왕서방한테 시집을 가겠다고  가겠다고....

그래서 비단옷 실컷 입어 보겠다고 보겠다고....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자 또 다시 내꿈은 변하여

역시 상대는 쭝꿔 쌀라미  그때부터는 찐빵장사 아저씨로 바뀌게 되었다가

어느날은 짜장면 장사..

또 어떤날은 극장에 기도선 아저씨에게 시집을 가서 영화구경이나 실컷해야 겠단

야무진 꿈..

어려서 누구나 가 그렇듯이..

시시각각 보는대로 듣는대로 내 꿈은 변화무쌍하게도 조석지변으로 바뀌어갔죠


나이가 들어 갈 수록 나는 허황하기 짝이 없는 불가능한 꿈들이 이루어 지지 않음에

 한탄 한탄 하다가 덜컥 시집이라고 오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다 보니

그 가지 가지 아름답던 꿈들은 아무리 머릿속에 그려봐야 이루어질수 없는

개꿈이란걸 알기 까지 한참을 걸려서야 깨닫게 되었죠


이제  나이를 먹어 가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위한 조그만 꿈들을 꾸게 되더라구요


우선 ..

우리손자 준원이가 나중에 커서 훌륭한 한의사가 되어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가는게

가장 큰 소망 이지만...

거기다 곁다리로 작은 소망이 있다면

지금은 통통? (내눈엔 그렇게 보입니다)

아니 뚱뚱? (혹시가다 그런말 하는사람 있습니다 기분나쁘게 시리..)

한 편인 준원이가 아래위로 길게 잡아 빼 논 젓가락 처럼 키가 크는것이고

거기다 더하여 살도 쏘옥~ 빠져 준다면 얼마나 좋을꼬???

참 소박한 꿈인데도 그게 영 맘같이 이루어 지지를 안더라구요


거기다 우리 귀염둥이 공주님 손녀딸 유나 디게 멋쟁이입니다.

몽실 통통 하게 생긴 유나는

샘도 많고 지 오빠에게 지고는 못삽니다

거기다 얼마나 멋을 부리는지 참으로 가관인것이

어깨 까지 내려 오는 긴머리  어쩌다가 묶어 맬라치면 혼비백산 해서 도망 가 삐립니다.

그렇다고 지가 빼어나게 이쁜이도 아니구만..

모델 언니들이 긴 머리 풀어 혜치고 다니는게 지 눈에는 그리 얘뻐 보였나 봅니다.

눈썰미 하나는 끝내주게 좋은 유나는

탈렌트 언니들 흉내를 낸다면서 뻑 하면 할머니 화장품  있는대로 꺼내놓고 얼굴에

처발르질 않나 맆스틱 있는대로 뿌러트려 두동강으로 만들지를 않나 

엎어지며 자빠지며  제 엄마 하이힐 질질 끌고 온 집안을 쓸고 다닙니다.

지금은 모두들 못난이 유나라고 부르지만...

앞으로 눈부신 처녀로 자라 좋은 가문에서 훌륭게 자란  멋진 남자랑 결혼 해서

 행복하게 살아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지금의 내 꿈은 ..

온 가족이 늘 건강하고  늘 행복하며  손자 손녀들이 자라 시집 장가 갈 때까지

건강하게 살아있기를 바라는 내 소박한 꿈이 이루어 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