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손자에게 나의 뿌리알려주기

그해 겨울은 앵클부츠 가 있어 행복했네.

primavera1945 2025. 2. 22. 07:52

아직도 생생한 기억의 편린 30.

큰애가 유치원을 입학한 그해 가을
나는 점점 더 많은 일에 쌓여 잠시잠깐도 쉴틈이 없었다.

거의 7개월 동안 밤낮이 바뀐 딸이 낮동안은 늘어지게 자면서 저녁만 되면 울어 제키는 거였다.
업어도 보고 안아도 보아도 막무가내로 울어제키는 딸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잔 나는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는 더구나 폐결핵으로 고생하는 식구들에게 둘러싸여 사는 게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다.

꼬챙이처럼 말라가는 내게 요한 씨는 산후풍에 먹는 보약도 다려주고 이제 밥 굶을 걱정은 하지 않을 정도가 되니 애기보는 처녀라도 하나 구하려고 사방에 도움을 청했더니 마침 큰언니가
밥만 먹여달라는 집 처녀가 있다고 연락이 왔다.

언니네 앞집에 사는 은심이 사촌이라며 너무 가난하니 입이라도 던다고 아주 예쁘고 온순하게 생긴 16살 태희를 우리 집에 보내주었다.
추석과 설 명절에는 고향집에 보내달라는 조건으로 우리와 함께 살게 된 태희는 쌍가플 눈이 초롱초롱하고 오뚝한 콧날이 지금 같으면 탤런트를 해도 손색이 없는  예쁘디예쁜 소녀였다.

삼시세끼 식사시중에 낮시간에 아기만이라도 태희가 봐주니 어찌나 홀가분하고 편하던지..

늦가을부터는 유치원 자모회도 혼자 갈 수 있겠거니 ..

상상은 즐거웠지만 날이 추워 올수록 자모회때 마다 차마 벗어놓기 부끄럽던 그놈의  털신에 대한 고민이 깊어가기 시작했다.
언제쯤이면 나도 반짝반짝 빛나는
부츠를 장만할수 있을까?
마음속으로는  멋진 오바 코트에
핸드백을 들고 굽높은 구두를 신고 맵씨나게 걷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환상에 휩쓸리기도 했다..

태희가 있으니 시장보기도 편해졌고  이사온지 2년쯤 지나자 금남시장 구석구석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초겨울 살짝 어스름이 내린 대로변
유명한 약국 앞 눈길 위에 가마니 떼기가 펼쳐지고 중고 신발들을 늘어놓았는데  누구는 훔친 물건이라하고 누구는 버린 물건을 손질해서 싸구려로 판다고 했지만 지나 다니면서 눈여겨 보았는데 낡긴 했어도 어느 정도는 신을 수 있는 구두처럼 보였다.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저녁 해 거름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길 거리 가장 자리를 옮겨 다니며 자리를 펴는 헌 구두 장사 아저씨가 싸구려를 외치며 호객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공교롭게도 발걸음을 옮기던 내 눈에 뜨인 게 회색빛 앵클부츠였다.

눈여겨보면서 지나쳐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면서 보고 올라가면서 보고 하는 내 모습을 눈치챈 아저씨가 부츠를 들고 막 싸게 팔아요~ 내일이면 팔리고 없을
테니 있을때 장만하라고 소리소리 외쳤다.

주춤주춤 조심스럽게 다가가 앵클부츠를 가르키며 값이 얼마냐고 물으니 무조건 싸게 준다고 한 것이 아마도 새 구두값의 3분의 1 가격이었던 것 같았다.곱게 신으면 십 년은 신을 수 있다고 가죽도 최고급 품이라고 하는 말을 철석같이 곧이듣고 한달음에 집에 달려가서
요한 씨를 졸랐다..

내가 꼭 신고 싶던 구두가 가마니 떼기 위에 사흘째 담겨 있다고 꼭 신고 싶다고..유치원 자모회 때마다 나 혼자 털신을 신으니 너무 부끄러워 신발을 못 벗는데  헌 구두라도 좋으니 사게 해 달라고 졸랐더니 나중에 형편이 좋아지면 새 구두 사주려고 했는데 그렇게 그 물건이 마음에 든다니 사가지고 오라고..

신발값을 받아 쥔 나는 나는 듯이 시장으로 내달아 그 회색 미들굽의 앵클부츠를 품에 안고왔다.남편도 신발을 보더니 가죽도 좋고 많이 낡지는 않았다고 이 구두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냐고 잘 신으라고 하면서 구두약도 바르고 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아 주기까지 했다.

드디어 유치원 생일잔치가 시작되는 날..
나는 누비 월남치마와 스웨터에 빌로드 목도리를 한채 고이고이 모셔두었던 앵클부츠를 꺼내 신고 난생처음 홀몸으로 유치원을
향하는 발걸음이
날아가는듯 가벼웠다.

큰길을 지나 자갈이 듬성듬성 박힌  골목길 오르막을 접어들었을때
부터 왼쪽 발 뒤꿈치가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하는것이 뭔가 신발 속에 이물질이 들어 있는 듯해서 신발을 벗어 털어봤지만 나오는게 없어서 새로 사 신은 신발이라 익숙치 않아서 그런가보다 하며  왼쪽발을 디딜때는 많이 조심해서 걸었다..

앵클부츠가 처음이라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집으로 오는 내리막길을 약간 절뚝이며 걷는데 뭔가 찌걱 거리는 느낌과 따끔거리는 느낌에 집까지 무척 조심스럽게 걸었다.

새 신발 신고 기분좋게 잘 다녀왔느냐는 요한 씨의 인사에 앵클부츠가 내 발에 맞지 않는지  발뒤꿈치가 아프면서 감각이 없어진것 같이 이상하다고 벗어 보였는데 양말 뒤축이 피로 물들고 신발 바닥에 피가 고여 있었다.

아니 이게 뭔 일이냐고..
걸을 때마다 찌걱 거리는 감촉에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피가 나는 거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내 말에
요한씨가 신발 내부 바닥을 만져보더니 뒤굽이 빠졌었는지 새로 박은 못이 바닥을 뚫고나와
뒤 꿈치를 찔렀는데 그걸
몰랐느냐며 혀를 끌끌차면서 쇳독이 얼마나 무서운데 참을게 따로 있지 부어오른 발꿈치를 보며
미련 곰탱이처럼 못에 찔린지도 몰랐느냐며 치료를 해 주며
싼게 비지떡이란 말이 꼭 들어 맞는 말이라며 부츠를 당장 내다 버릴 기세라 빌고 또 빌어서 구두방 아저씨한테 맡겨 못을 다시 제대로 박고 깔창을 사서 깔고 고쳐서 ..그러고도 4~5년은 더 신었는데 그 가난할 때 길거리에서 산 앵클부츠는 부자가 되어 구두를 수십 켤레 가진 후에도 30여 년을 버리지 않고 기념으로 고이고이 간직 했었다.

헌 구두를 사서 신는 것도 사치라고 여겼던 70년대
그 어렵던  금호동 달동네 시절의 삶을 평생토록 되새김하면서 지금까지 알뜰하게 살아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걸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

지금도 어디선가
앵클부츠를 볼 때마다..

추운겨울 뻥뻥 언 가마니떼기 위에 놓여있던 회색빛 앵클부츠의 핏빛 추억이 어김없이 떠올라 혼자서 웃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