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의 강론말씀
2005년 5월 8일 어버이날 이 었습니다. 마침 본당 신부님께서 휴가를 가셨다고 .. 모처럼 손님 신부님께서 주일 미사를 집전 하셨습니다.
준비하신 강론말씀은 작지만 카랑 카랑한 낮은 목소리로 어떤 신부님의 병자 성사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옛 이야기 였겠지만 .. 신부님의 말씀은 참으로 많은것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어떤 선배 신부님께서 깊은 시골 본당에서 사목 활동을 하시는데 때는 마침 삼복 더위에 병이나서 이틀 동안 아무것도 못잡수시고 기진하여 계시던중 어떤 아주머니로 부터 병자성사를 받을 환자가 있다하여... 꼭 지금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는군요
신부님도 몸이 워낙 편치 않으셔서 시간을 조금 뒤로 하시고 싶었나 봅니다. 하지만 지금 꼭 빨리 가야 한다는 말에.. 그 부인을 따라 아픈몸을 이끌고 몇십리를 ... 가도 가도 끝이 없더랍니다
겨우 폭염에 쓰러질뻔한 몸을 추슬러 아직도 병자의 집이 멀었냐고 물으시니 이제 거의 다 왔다고 하시며 저기 멀리~~ 아지랑이 처럼 가물 가물 보이는 오두막 하나를 가르키고는 아주머니는 잘 부탁 한다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는 온길을 부리나케 되돌아 가 버리더랍니다
기진맥진한 신부님이 겨우 정신을 차려 병자의 집에 다달아보니 거적대기로 겨우 하늘만 가린 .. 문도 창문도 없는 캄캄한 움막안엔 악취가 진동하여 숨쉬기가 어려울 지경이고 온몸이 썩어 문드러져 형체만 겨우 분별할수 있는 육신이 누워 있었답니다.
얼마나 혼자 오래 지냈는지.. 몸을 추슬르지 못한 환자는 대소변을 그자리에다 그냥 뭉게놓고
잠깐동안 .. 환자의 귀에대고 고백성사를 주시는 동안.. 구더기가 온몸에 기어 올라 일분 일초도 그곳에 머물고 싶은 맘이 없었답니다 마치 환자가 누워 있는 곳은 봄에 모를 심는 논바닥과 같이 오물로 발이 빠질 지경이 었다는군요
실낫 같은 목소리로 죄를 고백하는 환자에게 성사를 주고 받으며 신부님께서는 얼마나 그자리를 모면 하시고 �었겠습니까?
두시간이 넘는 죄의 고백에 합당한 성사를 주시고 이제 모든 죄를 사하였으니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편안한 안식을 누리라고.. 축복 기도를 하시고는 영성체를 주셨답니다
이미 턱이 빠져 ... 성체를 제대로 영하지 못할까 하여 입처럼 생긴곳에 면병을 넣고 턱을 닫아 주고 재빨리 자리를 피해 돌아 나오시는 순간
18살 처녀인 나환자는 신부님의 발목을 붙잡고...울부짖더랍니다
신부님! 제가 아무리 병자 성사를 받았다고는 하나.. 이렇듯 흉하고 악취로 뒤덤벅인 병든육신을 가지고 어찌 하느님 나라에 갈수 있겠습니까? 하더랍니다
그말을 듣는 순간 18살의 꽃다운 처녀의 너무나 아름다운 마음씨에 감복하여 천사가 따로 없구나 하시며 한시바삐 그곳으로 부터 도망치려던 자신을 뉘우치며 환자의 움막으로 되돌아 들어가셨다는 ....
그 뒷말은 제가 듣지를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주일이라고 ... 온갖 화장품으로 얼굴에다가 분칠을 하고.. 화려하고 귀티나는 원피스에다 핸드백이며,,, 악세사리며... 이렇듯 성장을 한 내 모습이 ... 갑자기 너무나 부끄럽게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정말 제 맘속에 존재하고 있는 .. 문둥병자의 썩어 문드러져 풍기는 악취보다 더한 수많은 죄와 악 들이 겉으로 드러날까 두려워 이렇듯 치장으로 가장한체 ... 나는 어떻게 오늘 .. 이렇듯 성스러운 성전에 앉아 양심을 속이고 있는고???하는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려 .. 신부님의 마지막 강론말씀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어버이날 이라고 하지만 올해 98세인 친정어머니를 뵙지 못한것이 벌써 일년이 되어오네요 10여년전에 큰오빠가 돌아 가시고... 환갑이 넘은 올케가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데 불편함이 너무나 많은것 저는 왜 모르겠습니까?
저도 스물한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40여년을 서씨 가문의 맏며느리로... 근 30년을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다가 시어른들 돌아가시고 친정 어머니도 8년을 모시고 살았었습니다 그래도 형제중엔 제가 생활이 제일 났다고 생각해서요
그후 큰아들을 결혼시켜 손자 손녀가 태어나고 ... 삼대가 한집에 살다 보니 참으로 저도 신식 시어머니라고 자부 하던 터라 며느리 눈치가 여간 보이는게 아니였습니다.
물론 우리 며느리 참으로 착하고 말없어서 금호동 동네가 다 며느리 잘 봤다고 칭찬들 하지만... 둘째놈과 막내딸이 오랜 외국 생활을 하던터라 일년이면 6개월을 외국에서 아이들과 지내다 오려니.. 노령의 친정 어머니를 며느리 에게 맡기는게.. 참 양심에 가책이 들더라구요
요즘 젊은 엄마들 시집 식구 꼴보기 싫어 시짜 들은 시금치도 안먹는다는 세상에.. 나는 외국에 나가 맘편히 놀고 먹고 홀 시아버지 모시기도 어려운데 거기다 시 외할머니까지 맡기려니 너무 염체 없어서... 보다 못한 주위 친척들의 권유도 있고 해서.. 4년전 올케가 준원이 애미 보기 부끄럽다고 대구로 모셔갔습니다
그리고 작년 4월 에도 조카딸이 많이 아파서 올케가 딸네집에 가야 한다고 다시 제가 엄마를 모셔서 석달만에 제가 미국에 가는 바람에 큰 언니가 모시고 있었습니다
참 살면서 겪는것이 노인문제인데 보통 심각한게 아니거든요 저는 언니들도 70을 넘어서 이미 노인 들이고 그렇다고 모아둔 돈이 있어서 양노원에 가실 형편도 아니고.. 형제들은 모두들 너밖에 책임질 사람 없다 하면서..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 울기도 많이 하고 형제들 야속 하다고 원망도 참 많이 했습니다.
모시고 오자니 며느리 눈치 보이고 더구나 한번 모시고 오면... 다시 되돌아 가실곳이 없는것이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올케도 언니도.. 다시는 내집에 어머니 모시고 오지마라 다~~~니 책임이다..
그래 저는 작년 9월말에 귀국 하고도.. 그렇게 보고 싶은 우리 엄마 얼굴 아직도 못보고 있습니다. 녜... 제가 죄인입니다. 뉴욕에 있는 딸이 .. 오늘 선물을 보내왔습니다. 그 선물을 받고 저는 엄마..우리 엄마 때문에 통곡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딸 노릇을 못하고 사나 하구요..
그리고 이번에 결혼한 둘째아들이 새 아기와 같이 선물을 보내면서 카드에다가... 어머니 아버지 천년만년 사시면서 저희들 효도 받으세요.. 녜...그 편지를 읽고 저는 지금도 잠을 못이루고 .. 이렇게 통곡하며 밤을 새우고 있슴을 고백합니다.
올해부쩍 건강이 나빠진 75세인 제 남편 요한씨 그리고 올해 13년째 한집에 같이 살고 있는 큰아들내외와 손자 손녀. 그리고 큰아들 결혼 하던해 오셔서 8년을 같이 사시다가 대구 올케한테 돌아 가신 올해 98세의 친정 어머니 저는 누구 눈치를 봐야 하는지 .. 이제 6월이면 다시 시카고에 가야 하는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런 괴로움을 가슴에 묻고 나자신에게 늘 반문 하며 살고 있으려니 오늘 같은 강론을 들으면 제 양심은.. 날카로운 송곳으로 찌르는듯 아파옵니다. 그리고 제 심장은... 어머니에 대한 불효함 때문에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정말 지금이라도 달려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우리 엄마 얼굴 한번 만져 보고 싶습니다.
니가 잘사니까 ...지금 당장 델고 가라고 나는 며느리고 너는 딸인데 딸이 셋이나 있으면서 왜? 왜? 왜? 니가 저 노인 처치 해라 나는 더 이상 모른다 버리던지 양노원 같다 주던지 니가 알아서 해라 이렇게 다그치며 쏘아대는 소리가 너무도 두려워서..
녜...우리 올케 언니 정말 맞는 말이예요 남편도 죽고 없는데 내가 왜 시어머니 모셔야 하냐는 .. 그래서 저는 더욱 어버이날이 두려워 집니다
어버이날이 지나간줄 알면.. 저희 어머니 왜 석일애미는 대구한번 안오나? 속으로 그러시면서 대문밖만 바라보실 우리 어머니.. 날만 밝으면 내일 당장 대구에 내려 가야지... 하면서도 지금껏 어버이날이 다 지나가도록 불효하고 있는 이 죄인을 벌주시옵소서
80이 넘으신.. 혼자계신 서모님을 모시기 위해 큰집으로 늘려가신 이 시대의 효자이신 안윤석님의 글을 읽고 저는 또 얼마나 양심이 아프던지요
우선 날이 밝으면 올케언니께 전화라도 걸어야 겠지요? 귀가 어두워 통화가 불가능한 어머니는 어떻게 해야 할지 .. 날밤을 세우며 고민해도 뾰족한 수가 없는 .. 아 저는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아버지께 매달려 기도해 봅니다. 저 소피아 정말 죄인중에 죄인입니다
하느님 저의 어머니가 맘 편하고 행복 하실수 있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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