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팩 훼밀리
2003년 4월 7일 월요일
준원이가 학교를 입학하고부터
알게 모르게 ,조금씩,서서히
준원이를 주축으로 해서 변해가는 우리 식구들의 모습을 보고
나는 혼자서 웃음 지을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우선 우유팩 사건만 해도 그렇다.
그하찮은 우유팩이 준원이의 학교생활이 시작된이후 우리 식구들에게 그렇게 소중한 물건이 되리라곤
그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사람은 환경이 지배 한다더니 우리식구들의 머리속엔 이미 우유팩이 NO 1의 중요 위치에 각인되었고
우유팩으로인해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입학하고 얼마후 학교에선 재활용 목적으로 우유팩을 수거해서 아마 그것을공책으로 재가공하여
재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는 모양이었다.
그건 준원이의 전달이니100% 맞는 말일터
더구나 우유팩은 양질의 나무가 원료라 재가공해서 휴지나 공책을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을터 였다.
하지만 그 우유팩때문에 앞으로 벌어질 사태는 짐작도 못한체 우리는 순진하게 우리집에서 먹는 우유팩을
정성껏 씻어 말려 가지고 입학후 처음으로 수거하는날 쇼핑백에 가득담은 우유팩 100여장을
준원이의 손에 들려 보냈다.
한데 사건은 하교후에 벌어지고 만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준원이는 자기반 학생들이 가지고온 우유팩을 보고 놀래버린 모양이다 .
어떤 친구는 300장을 어떤 친구는 500장을 또 어떤 친구는 600장 가까이 가져와서 선생님께
스티커 까지 받았다고 하지 않는가?
"뭐? 스티커?"
우리는 완전 경악에 가깝게 동시에 합창하듯 소리쳤다.
우리준원이가 학교에 입학한후 이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고, 가장 간절히 원하고,가장 애지중지
하는게 있다면 그것은 단연 스티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상표였다.
"아니 진짜 우유팩 많이 가지고 가면 스티커 주는거야?"
"엉.우리반에 600장이나 갖고온 친구가 일등으로 많이 가져 왔거등?
그래서 선생님이 상으로 스티커 주셨단 말이야"
이미 스티커가 가지고 있는 위대함을 알아버린 우리는 까무라치지 않는게 천만다행이었다.
"에구~ 내 그럴줄 알았으면 어디 동네방네 다니면서 얻어라도 올껄!"
가슴을 치고 머리를 쥐어 뜯으며 한탄을 해봤자, 이미 버스는 떠나가고 먼지만 날리는 격이었다.
앉으나 서나 순진한 준원이는 친구들이 받는 스티커에 목을 메고 있었다.
어떻게해야 우리 손주에게 스티커를 보따리로 안겨줄수가 있단말인가?
누구에게도 지고는 못사는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어린게 부모 잘못만나서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꼬? 생각할수를 속이 상하고 기가 막히는게
아니 나는 할머니 란게 어째 그런것도 모르고 있었을꼬? 나는 할매도 아니여....
풀죽어 있는 준원이 보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스티커 때문에 맘에 상처를 받은 준원이는 완전 기가 죽어서 울상을 짓고 있었다
"엄마, 할머니, 우리도 우유 많이 먹자 !나만 조금 가져가구 씨! 그니까 할머니도 우유 많이 먹구
엄마도 많이 먹구 그래서 나도 우유팩 많이 가져가고 싶단 말이야
나도 그러면 스티커 받는건데......"
준원이는 못내 그눔의 스티커 때문에 맘이 쨘~ 한지 하루종일 기분이 시무룩한게 영 말이 없었다.
"아니 우리 준원이가 공부는 그렇다 치고 그놈에 우유팩도 일등으로 못가져 갔단 말이지?
얘, 애미야 우리도 이참에 우유좀 1000 ml 더 시키고
어쨌건 골다공증도 예방할겸 우유 많이 먹자 . 아니 그리고, 너는 요즘사람이 어째 우유도 안마시고 사니?
우유를 많이 마셔야 미인되고 피부가 고와진다는데 너도 이참에 좀 많이 먹어봐라 얼마나 몸에 좋은가?
그리고 준원이 할아버지도 하루에 1000ml 씩 마시라고 하고 일층에 배달시키고 알았지?
나 원참 !"
나는 갑자기 가족들의 건강에 무한한 애정과 염려하는 마음이 생긴것 처럼 모든 식구가 우유로 무장하여
건강을 찾자고 열변을 토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나는 다음번에 우유팩 수거 할때까지 먹을수 있는 우유를 계산하고 담엔 700장으로 기염을 토하고 말꺼다
두고 봐라 스티커는 따논 당상일거라고 준원이를 안심 시키고
이제 부턴 먹기 싫어도 우유를 많이 먹어야 겨울방학 끝나고 개학하면 우유팩을 많이 가져 갈수있다고
하루에도 몇번씩 세뇌를 시키곤 했다.
그리하여 무리를 하여 우유를 더 시키고 욕심을 내보았지만
우유를 먹기에는 한도가 있는지 일주일을 죽어라고 1000ml를 먹어 제켰더니
이제 우유봉다리만 봐도 구역질이 나는게 이게 예삿일이 아니고 큰일 중에도 큰일이 었다
"아니 왜 이렇게 우유가 먹히질 않지? "
어쨌건 며느리와 나는 죽을 힘을 다해 우유를 마셔대다가 어느날 부터
너무 무리한탓인가 계절탓인가 처음엔 다리에 그담엔 팔에 그리고 등에
옆구리에 할것없이 좁쌀같은게 돋아나더니
온몸이 참을수 없도록 가려워지고 미친듯이 긁어부스럼까지 만들어내는 알러지 증상이 생겨
2개월가량 피부과 신세를 지는사건 마져 발생하고 말았다.
당분간 우유를 끊어 보라는 선생님 말씀에 대답은 예 하고 했지만
그래도 하루 500정도는 먹어줘야 할머니 체면이 서는건데
이거야 말로 참으로 난감한 사건중의사건이었다.
이일을 우째야 쓸꼬?????
아~ 나는 넘어가지 않는 우유를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더 먹어줄수있을까
고민,또고민 하고 있었지만 역시 나이를 먹으면 사고력이 떨어진단말을 절감했다.
글쎄 우리 똑똑한 준원이 애미는 기발한 착상을 하고 이미 그계획을 시행하고 있었던걸
한달 가까이나 나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쩐지 저녁을 먹고 받아 쓰기 한판을 하고 나면 찬바람 쌩쌩부는 겨울밤에도
준원이 운동시킨다고 두 모자가, 때로는 유나까지 셋이서 밤나들이를 하는것이었다.
십년째 한솥밥을 먹고있는 우리는 삼대가 오손도손 정겹게 살면서 이웃의 부러움을 독차지하고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필수과목
1 보고 도 전혀 못본척 딴전 ? 보기
2 듣고도 아예 못들은척 나몰라라~~~~~~~~하기
3혹시라도 서운해할말은 절대로,무조건 안하기로 석삼년을 무사히 넘긴 나는 왕..자부심 할머니
그러니께,밤마다 어디를 가느냐 ?
추운데 아이들 감기들면 어쩌느냐?
뭐하는데 맨날 이렇게 나다니느냐?
이런 따위의 말자체는 너무도 사려깊은 신식 시어머니임을 자처하는 나 로서는
절대로 입밖에 내는 성질이 아니었다.
혹시나 애미가 나 모르게 뭔가 먹고 싶은게 있는가?
밤쇼핑이라도 가는건가?
아니면 밤 마실가서 친구들과 스트레스나 풀다 오려나?
나름대로 머리속으로 정리를 하면서도
밤마다 슬그머니 나갈라 치면 단단히 입히거라, 운동많이 하고 오너라.....
하고 대문간에서 배웅을 해주는 나는 참 착한 척하는 할머니일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학수고대하는 인어아가씨와 9시 뉴스가 끝날때 까지는
아이들이 무슨짓을[? ]하고 들어 왔는지 확인을 안해본게 내 잘못이라면 잘못일까?
더구나 아이들땜에 밤늦게야 내 차지가 된 컴퓨터에 앉았노라면 간혹 주방에서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나더라도 뭐 간식 같은거 해먹는 모양이구나 하고 무심히 지나쳤는데 ,
어느날 손녀딸을 데리고 수퍼에 갔는데 큰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나는 수퍼에서 이것 저것 소용되는 물건을 카터에 주워담고 있었는데 옆에서 어떤아이가
우유를 마시고는 빈 팩을 수퍼 에 비치된 쓰레기통속에 던져 넣는것이었다.
골~~인~~ ! 우와~~~~
야 ! 쟤좀봐라 진짜 잘던진다 그치?
나는 신기하다는듯 유나를 쳐다보며 웃고있었는데 .....
내 귀여운 손녀딸 유나는 할머니말은 들은둥 만둥 갑자기 잡은손을 뿌리치더니
100m 단거리 선수가 된것마냥 그눔의 쓰레기 통을 향해 쏜살같이 돌진하는게 아닌가?
아니 쟤가 뭔일이여?????
놀래고 자시고 할겨를도 없이 내 손녀딸 유나는 바로 그문제의 쓰레기통에 쑤셔 박히듯
다이빙을 했다는게 맞는말인거 같다.
뭐? 뭐야? 뭐하고 있는거야?????
나는 너무나 놀랍고 부끄럽고 창피해서 소리를 벽력같이 질러버렸다.
주위에서 쇼핑하던 사람들은 갑작스런 고함소리에 기함을 해서 전부들 나를 쳐다보는데
사실은 나도 내 큰목소리에 얼마나 놀랬던지 하마터면 그자리에 주저앉을뻔 했다.
에고 ~~~이게 아닌데?????
하지만 어쩌랴 ! 순식간에 착한 할머니로 변신할수 밖에.........
"유나야~ 우리 이쁜이가 그더러운 쓰레기 통을 왜 뒤지는거야?
그건 나쁜짓이고 에비~하는거야 그런거 하지마" 하고 그랬더니.........
세상에나~~~~~~~~!!!!!!!!!
유나는 오히려 내게 소리치는 것이였다
"할머니 여기 우유팩이 있잖아. 그거 오빠학교에 가져가야 한단 말이야" 하고 금방버린
우유팩을 의기양양 주워오는게 아닌가?
"그래도 그런거나 줍고 그러면 사람들이 흉봐요. 거지라고 놀리고 그러면 창피하잔아?
그러니까 그런거 쓰레기통 같은거 뒤지고 그러면 나쁜 병균도 있고 그래서 병도나고
병원가서 주사도 맞고 그러면 얼마나 아픈데 그래 너 주사 맞기 싫어하지?" 했다.
그러나 유나는 더욱 황당하고 기막히는 소리를 계산대 앞에 늘어선 사람들앞에서 하는것이였다.
"할머니는 뭘 몰라!
엄마랑 오빠랑 나랑 맨날 맨날 밤에 운동은 안하고 우유팩만 줏으러 다니는데
병도 안났는데 할머니는 병난다고 거짓말치고!"
아니?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우유팩을 줏으러 다니다니? 언제?
나는 하도 하도 기가 막혀 말이 안나올 지경이라 그자리에서 애미한테 전화를 했다.
"애미야 유나랑 수퍼에 왔는데 이러이러 하고 저러저러한데 유나말이 맞는말이냐?"
대답은 너무나 간단하게도 이러했다.
"예" 맞아요 어머니. 하는거 였다.
아니 이런일이 ? 이게 사실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나는 발걸음이 나도 몰래 달음박질로 변해있었다.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간 나는 자초지종을 듣곤 진짜로 뒤로 나가 떨어질뻔했다.
아니 ! 뇌진탕 으로 쓰러지지않는게 이상했다
세상에 무슨 이런일이???????????????
이 추운 겨울에 귀며 볼이 얼어서 들어와도 운동하느라
준원이 살뺀다고 인라인 스케이트 타다 오는줄만 알았는데.......
밤마다 운동시키러 나간다고 하구선 오늘은 이골목 내일은 저골목 하면서
재활용 쓰레기 더미에서 우유팩 골라오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니 이런 기가 막힐일이........
아니 사립학교라고,
공부 잘가르키라고 수업료도 그렇게 많이 내는구만은 남안하는일을 이렇게 시키다니" " " " "
아무리 재활용도 좋고 스티커가 좋기로서니 이러다가 우리 아이들 단체로 떼거지 만드는거 아닌가
걱정이 되고 아예 아이들 둘데리고 동냥을 댕기는게 났지
세상에 ! 세상에나! !!!!!!!!!
이것이 뭐하는짓인가?
벌린입이 다물어 지지않았다.
"네가 아주 귀한 새끼들을 북한애들처럼 꽃제비 만들려고 작정을 하는구나
잘못했다간 아주 꽃제비 훼밀리 되겠다."
말은 그리 야무지게 했지만서도 현장확인을 한 나는 다른 한편으론 후회가 막급이었다
멀쩡한 아이들 생거지 만들겠다하고 역정을 내는척 했었지만
나도 진작에 합류 했었더라면 그아니 좋을손가
며느리가 그동안 주워다 옥상에 감춰논 우유팩을 보곤 나도 몰래 감탄, 감격하고 말았다.
정말 태산도 옮긴다는 속담도 있지만은 태산이 달리 태산이던가?
바로 거기에는 주워다논 우유팩의 태산이 버티고 있었다.
!!!!!!!!!!!!!!!!!!!!!!!!!!!!!!!!!
말이 필요 없었다.
진짜 두말하면 잔소리지.
겨울방학 내내 ~~~~~~~~~~~~~~
금요일이면 삼성레미안 아파트 재활용 수거날,
벽산 아파트는 무슨 요일이 수거날,
대우 아파트는 또 무슨 무슨요일,.......
줄줄이 며느리는 손을 꼽아 가면서 읊어대는데
날마다 한자루씩 날라다 내가 잠들면 밤새 씻어말려서 차곡차고 박스에다 하나씩 채워 놓았던 것이다.
그걸보고 스티커 못받아도좋으니 재발 그러지 말라고 애원하고 말렸지만 밤만되면 슬그머니 사라지는
며느리가 어떨땐 그렇게 이뻐보일수가 없었다.
순하기론 대한민국에서 첫째갈텐데 역시 우리 며느리가 자식 욕심은 있구나~
며느리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된 나는 내 머리 속에도 깨달음이라는게 자리 잡히기 시작했다.
"그래? 애미가 저렇게 애를 쓰는데,,,' 나라고 가만 있을손가?
우유를 마셔대지 못하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이 할머니 체면을 좀 세워야지 ......."
이대로 주저 앉을수는 없지 내가 누군가 ?
천하에 둘도 없는 이세상에서 젤 이~쁜 서준원이 할머니가 아닌가베?
나도 녹슨 머리를 강력세척제로 드라이 클리닝을 좀 하고 새로운 정신으로 이리 저리 계획을 세워보았다.
고민 고민 머리를 쌓매고 나름대로 궁리를 하다보니 궁하면 통한다고 ...
생각이 있는곳에 길이 있다고 신경을 쓰다보니까 의외로 가까운곳에 우유팩들은 널브러져 있는게 아닌가?
" 맞어! 맞어!
목욕탕! 아 ! 나는 드디어 생각해 내고 마랏따~.
성질 급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는 그이튿날 까지 미룰것도 없이 목욕 보따리를 싸가지고
그밤중에 혜성사우나로 향하면서 나는 벌써부터 기분좋은 상상에
나도 모르게 입이 함박만 해 지고 있었다. 밤이기에 망정이지 대낮에 실실 거리며 다니다가는
한의원집 사모님이 실성끼가 있다고 소문나기 딱이었다.
.
밤시간이라 할증료 까지 내고 들어간 나는 목욕은 간데 없이 둘레둘레 돌아보며
어느누가 우유 종류를 마시는가 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걔중에 더러 캔음료를 마시는 사람을 보면
아니 저 사람은 왜 우유같은 완전식품을 마다하고 저런 몸에 해로운 탄산음료를 마시는거야?
하고 나도 몰래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쯔쯔쯔쯔 혀를 차기도 하고
내가 이거원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있는건 아닌가 퍼뜩 정신을 차려 보기도 하지만
우짤꼬? 내마음은 염불보단 잿밥에 있음이니..........
그리하여 내머리에속엔 생각하노니 오로지 우유팩 뿐이요
보이느니 팩우유 한개씩 먹는 사람뿐이였다
거기다가 먹고 바르고 하려고 두개씩이나 들고 들어오는 사람을 보면 구세주가 따로 엄따.
우유 안먹는 사람은 아예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았다는게 솔직한 내 생각인걸 만약 다른 사람이 안다면 ?
당장에 머리 쥐어 뜯기고도 남을 일이지만 나는 내맘도 내맘대로 못한다카이...
그리하여 목욕은 여벌로 하는듯 마는듯 눈여겨 보자니까 처음엔 우유팩이 조그만 플라스틱 쓰레기 통속으로
들어가고 그것이 가득 차면은 청소 아줌마가 커다란 비닐자루 같은걸 가져와서 거기다 쏟아 붓는거였다.
"아하! 자루가 차기전에 머리부터 감고 저걸 수거하러 들어오면 한번 부탁해봐?"
나는 나름대로 생각하고 미리부터 행동사항을 계획하고 구상했다.
그럭저럭 한시간 가까이 지나 비닐 자루가 거의 다 차서 배가 불러오자
나는 얼릉 마무리로 머리부터 감기로하고 부지런히 샴푸로 거품을 내어 머리를 감고 있는사이
난데없이 아줌마 하나가 들어오더니 보물단지같은 비닐자루를 찜해놓은 사람 에겐 허락도 없이
번쩍 들고 나가는게 아닌가?
아니! 이런변이 있나?
나는 머리에 거품을 뒤집어 쓴체 기겁하며 뛰어 나가 자루를 붙잡았다.
"아줌마, 잠깐만요,
이거 버릴거예요? 버릴려면 저를 주세요."
눈도 못뜨고 자루를 붙잡고 매달리는 내가 불쌍했던지 이런게 다 필요하냐고 묻는 거였다.
"암요 필요 하고 말고요 우리손주 숙젠데 이거 제발 나좀 주세요 돈드릴께요"
나는 자꾸만 애원쪼로 말이 나오는게 잘못하다가는 눈물까지 흘릴 지경이었다.
"머리 헹구고 나오시면 드릴테니까 천천히 나오세요. 저기 모아논거 냄새가 좀 나는데 그것도 드릴까요?"
하는 아줌마가 오늘따라 왜 그리 예쁘고 천사같아 보이는지....
나는 너무나 고마운 나머지 나도 몰래 자꾸만 굽실굽실 절을 해대면서 다짜고짜 아줌마를 냉장고 쪽으로
끌고 가선 200짜리 오랜지 쥬스팩 5개를 꺼내 아줌마 한테 들이 밀었다.
"아줌마! 고마워요 이것좀 얼릉드시고서 빈 팩은 다시 나를 주세요???."
나는 나도 모르게 이런말을 내뱉고 있었다
아줌마는 오렌지 쥬스팩을 받으며 이걸 어떻게 한꺼번에 다 마시냐는듯 나를 물끄러미 보는게 마음속으로
" 아니 이 여자가 팩에 환장한건 아닐까? " 그러는거 같았다.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순가?
우유팩이 한자루 ! 거기다 냄새가 좀 난다지만 더 모아 둔게 있다니 ....
나는 까딱 잘못했다간 너무좋은 나머지 벌거벗고 춤춘다는 속담을 실행할뻔했다.
에구~~~~~~~~역시 늙으면 주책이라니께!
목욕은 하는지 마는지 그깟것 못하면 내일 하면 되고 아니면 집에서 샤워하면 되는것이고.....
어쨌건 나같은 머리로 궁리해서 한꺼번에 7~80장의 우유 팩을 이렇게 손쉽게 얻을수 있음에...
하느님께 감사 ! 천주께 감사 ! 성모님께 감사!
자꾸만 자꾸만 감사 ,감사, 감사기도가 나오는거였다.
의기양양 콧노래를 부르며 우유팩 보따리를 양어깨에 둘러매고 집으로 향하다 골목길에서 삼산수퍼
쓰레기통을 뒤져 또 한보따리의 우유팩을 안고오는 며느리와 마주치고 말았다.
[아마 내 어릴적에 배운" 의좋은형제"가 오밤중에 볏단 둘러매고 가다가 마주치면 이런 장면아니었을까?]
누런투명봉투 사이로 찌그러진 우유팩들이 보이자 며느리는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 에구 이제 어머님 까지? " 하는거였다.
우리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희희낙낙 하며
니 아들 준원이가, 아니 내 손주 준원이가,
이번 개학을하고 2학년이 되면 기필코 우유팩 모으기 만이라도 일등을시키자고 화이팅을 외쳤다.
겨울동안 ....
2003년 1월 2일 부터 3월 말까지 한겨울 추위에도 부득이한 사정으로 집수리를 하게되었다.
문제는 오직 하나 집수리로 온 살림살이가 뒤집어 진다해도
우리 두 고부는 행여 모아논 우유팩이 한장이라도 분실되는 사고가 발생할까봐 전전긍긍
여기로 치웠다가 저기로 올려 놨다가 오직, 아니 일편단심 우유팩의 관리 에만 일천 정성을 쏟아부었다.
드디어 2003년 4월 하고도 7일 월요일
오늘이야 말로 준원이가 2학년이 되고서 처음으로 우유팩을 학교에 가져가는 날 이었다.
어제밤부터 신주단지 처럼 모셔놓는 우유팩은 100장씩 한묶음으로 몇상자가 차곡차곡 계단에 내려 쌓이더니
도저히 준원이의 힘으로는 못가져 가는 분량이니 애미가 아침에 학교까지 준원이를 태우고 우유팩을 전달하고 오겠다고나가는거였다.
"애미야 그동안 모은 우유팩이 전부 몇개인지 알기나하니?" 하고 물었다.
"그럼요, 다 세어 놨어요 . 전부 2500개요. 차에다 실었더니 차로 한차예요."그러는거였다.
스팩트라의 트렁크는물론 뒷좌석 천정까지 우유 팩으로 들어차고
앞좌석도 겨우 준원이가 탈 공간밖에 없었다.
"세상에 2500개 라니?
아예 차로 한차잖어? 그럼 이번엔 일등 틀림없겠지?' 나는 애미에게 물었다.
그러나 애미대답은 이랬다.
"모르죠.누가 우리보다 더 모아 오는 사람이 있을지도, 거기 엄마들이 여간 극성들이 아니라서요..."
나참 기가 막혀서!........
누가 누구보고 극성이래는지 원!
" 아니 이렇게까지 극성으로 모아서도 일등 못하면 아예 우유팩 모으기 없는 학교로 전학을 가던지,
아니면 아예 이민을 가던지 해야지 나 원 참!"
내 걱정을 뒤로 하고 학교를 다녀온 애미는 신이나서 얘기했다.
" 어머니,학교에 갔는데요, 교장선생님께서 우유팩 보따리를 보시고 놀라시더라구요,
어떻게 이렇게 많이 모았냐구요?"
그말을 듣고 조금은 안심을 했지만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앞으로 남은일은 우리 준원이가
가족의 희생과 봉사 정신의 덕으로 스티커 한장이라도 받아올수 있는가 기다리는것만 남았다.
아! 그리하여 우유팩과의 전쟁은 드디어 오늘로서 끝이라고 만세까지 불렀건만.......
준원이 애미가 상기시키지 않았다면 오늘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사실도 깜빡 잊어 먹을뻔 했다 .
아 우리는 어쩔수 없는 우유팩 훼밀리,끝까지 우유팩으로 승부를 걸자! 걸자! 걸자!
공부는 일등못해도 우유팩만은 일등 양보못하지로?.
서준원 ,화이팅!!!
우유팩 훼밀리 화이팅!팅!팅! 아자~~~~~~~~~~~!!!*
후문
오잉 ~~~~~~~너머 너머 슬프도다 !
우리는 아무래도 이민을 가야만 할것 같다.
세상에~~~~~
어떤 엽기가족이 글쎄 !
우유팩을 용달차로 한차를 싣고 왔다네????? 나참 기도 안 막힌다.
그거 어디가서 그렇게 모아 왔는지 그집에다 전화해서 물어 보라꼬
내가 아무리,아무리 며느리보고 닥달을해도 시집온지 십년만에 처음으로
시어머니 이야기에 콧방귀만 뀌고있는 전무 후무한 대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말세야 말세!
세상에 그런 독종들이 서울 하늘밑에 같이 살고 있다니?
꼴등해도 좋으니까 다시는 그딴 쓸데없는 우유팩 같은거 모으기만 해봐봐? 내가 가만 않있을테니까??
며느리 한텐 으름장을 놓았으면서 오늘도 나는 유나가 마시는 우유팩을 며느리 몰래 얼른 행궈서
옥상방에 숨겨 놓는다.
참 당신도 병이여 , 병!
아직도 단념 못하고 습관적으로 우유팩을 모으는 나를 보고 남편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그래 나 병났어요 그래서 어쩌라구?????
"당신도 한번 생각해봐봐! 그 우유팩 용달차로 싣고 온집 말인데....
아무래도 우유대리점 하는집 아닐까?"
아유 성질나~~~ 암것도 모르면서...
아니 그럼 대리점은 우유 도매로 넘겨 주는 집이지 식구들이 돌아 앉아서 우유만 퍼 마시나?
사돈에 팔촌까지 다 돌아앉아 하루세끼 마셔도 용달로 한차는 안되네요...
"혹시 누가 알어? 일가친척들 꺼정 나서서 도와 줬는지?"
몰라! 그럼 당신도 서씨네 문중 무슨공파 ,무슨공파 다 불러와봐요.
달성서씨 대구서씨 가리지 말고...그럼 우리도 우유 대리점 하나 차려볼테니까 원.
부창부수라더니 남편도 준원이가 일등못한게 못내 맘에 걸리나 보다...
그 추운데 밤마다 애미가 어린것들 데리고 그토록 고생 고생 했는데.... 쯧쯧쯧해가면서...
일등한 아이는 무려 석장인가의 스티커를 받았고 준원이도 한장을 받았데나?
하지만 기대감을 상실한 우리가족은 며칠동안 몸살도 아닌것이 병명도 모른체 앓아 누울수 밖에 없었다.
내 남편이 한의사지만 , 이런경우에는 약도 없다네요?
아마 이런 속담 있을껄요 !!백약이 무효!! 라고, 여러분은 들어 보셨는지???
에고~ 내새끼 키울때는 어려운줄 몰랐건만
손주녀석 키우기가 이렇게나 힘이드는줄 예전에 미처 몰랐다니까요
그래서 꼴등이라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그것으로 가훈을 삼기로 했죠
이참에..이민? 그것도 쫌 생각해 볼려구요
초등학교가 이럴진데 중학교 고등학교 가면 우째야 할꼬 그게 걱정이라니까
남편은 별걸 다 가지고 미리서 걱정한다고 걱정도 팔자다 그러고 있는 중이예요
정말이지 진짜로 걱정되네요 우리 준원이 앞날이...